존경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사랑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칭찬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명예로워지려는 욕망으로부터,
찬양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인기를 끌려는 욕망으로부터,
모멸받는 두려움으로부터,
경멸맏는 두려움으로부터,
질책당하는 두려움으로부터,
비난당하는 두려움으로부터,
오류를 범하는 두려움으로부터,
우스꽝스러워지는 두려움으로부터,
아멘.
... 그러고 보니 오래 전에 기독교의 스승들이 악한 사람의 행위는 미워하되 그 사람 자체는 미워하지 말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는군요. 그들이 말했듯이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저는 이런 구분이 너무 지나쳐서 우습기까지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어떤 사람의 행위는 미워하면서 그 사람은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몇 년 후, 제가 평생동안 그렇게 대해 온 사람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비겁함이나 자만심이나 탐욕은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계속 자신을 사랑해 왔습니다. 그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그런 것들을 미워한 이유는 바로 저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짓을 저지르는 종류의 인간밖에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토록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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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에 담긴 뜻입니다. 즉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그에게 호감을 가지라거나 그가 근사한 사람이 아닌데도 근사한 사람이라고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전혀 사랑할 만한 부분이 없는 사람들도 사랑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점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라나 여러분 자신에게는 사랑할 만한 부분이 있어서 사랑합니까? 여러분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단지 그 대상이 여러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모든 자아들을 이와 똑같은 이유로, 또한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 주시기 위해 우리 자신의 경우를 통해 쉽게 그 본보기를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법칙을 다른 모든 자아들에게도 계속해서 적용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마 적용이 더 쉬워질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근사하고 매력적인 자질들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가 자아라고 불리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사랑하십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그것 외에 사랑받을 만한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남 미워하기를 너무나 즐기는 나머지 그 죄를 버리는 일을 술이나 담배 끊는 일이나 매한가지로 여기는 우리 같은 피조물들에게는......
C.S. Lewis의 [순전한 기독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