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9, 2008

마더 테레사의 기도문


오 사랑의 주님,

존경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사랑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칭찬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명예로워지려는 욕망으로부터,
찬양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선택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인기를 끌려는 욕망으로부터,

모멸받는 두려움으로부터,
경멸맏는 두려움으로부터,
질책당하는 두려움으로부터,
비난당하는 두려움으로부터,
잊혀지는 두려움으로부터,
오류를 범하는 두려움으로부터,
우스꽝스러워지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소서.

아멘.


Thursday, November 20, 2008

용서와 사랑 [퍼온글]

... 그러고 보니 오래 전에 기독교의 스승들이 악한 사람의 행위는 미워하되 그 사람 자체는 미워하지 말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는군요. 그들이 말했듯이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저는 이런 구분이 너무 지나쳐서 우습기까지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어떤 사람의 행위는 미워하면서 그 사람은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몇 년 후, 제가 평생동안 그렇게 대해 온 사람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비겁함이나 자만심이나 탐욕은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계속 자신을 사랑해 왔습니다. 그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그런 것들을 미워한 이유는 바로 저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짓을 저지르는 종류의 인간밖에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토록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

이것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에 담긴 뜻입니다. 즉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그에게 호감을 가지라거나 그가 근사한 사람이 아닌데도 근사한 사람이라고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전혀 사랑할 만한 부분이 없는 사람들도 사랑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점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라나 여러분 자신에게는 사랑할 만한 부분이 있어서 사랑합니까? 여러분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단지 그 대상이 여러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모든 자아들을 이와 똑같은 이유로, 또한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 주시기 위해 우리 자신의 경우를 통해 쉽게 그 본보기를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법칙을 다른 모든 자아들에게도 계속해서 적용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마 적용이 더 쉬워질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근사하고 매력적인 자질들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가 자아라고 불리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사랑하십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그것 외에 사랑받을 만한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남 미워하기를 너무나 즐기는 나머지 그 죄를 버리는 일을 술이나 담배 끊는 일이나 매한가지로 여기는 우리 같은 피조물들에게는......

C.S. Lewis의 [순전한 기독교] 중에서...


Thursday, October 30, 2008

주를 의지함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 시편 13편 5절 -

"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 잠언 3장 26절 -


나는 때때로 내가 무언가를 깊이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사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항상 무언가에 기대어 살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가 의지하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 항상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들은 내가 의지할 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내가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이시며, 내가 주의 사랑만을 의지할 때, 주가 주시는 구원의 기쁨을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이 나의 마음에 깊이 인식된다.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나에게기쁨이 된다.는 진리.


그런데도 왜 나는 계속하여 하나님 이외의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그것들에 의지하여 살려고 하는 것일까.....

Monday, October 27, 2008

기도 ...

호세아 6장 1~7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하니라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


아버지께 간구합니다.
갓난 아기와 같은 나는 하나님의 손길이 없이는
단 하루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인것을 깨닫게 하시옵소서.
아버지를 향한 나의 마음이 떠오르는 햇빛에 쉽게 사라지는
아침 이슬과 같지만, 내가 다시 나의 마음을 아버지께로
돌이킬 때 아버지... 저를 다시 아버지의 품에 안으시고
제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Wednesday, October 22, 2008

기도에 대한 짧은 묵상

Luke 18:1~8

1 Then Jesus told his disciples a parable to show them that they should always pray and not give up.
2 He said: "In a certain town there was a judge who neither feared God nor cared about men.
3 And there was a widow in that town who kept coming to him with the plea, 'Grant me justice against my adversary.'
4 "For some time he refused. But finally he said to himself, 'Even though I don't fear God or care about men,
5 yet because this widow keeps bothering me, I will see that she gets justice, so that she won't eventually wear me out with her coming!' "
6 And the Lord said, "Listen to what the unjust judge says.
7 And will not God bring about justice for his chosen ones, who cry out to him day and night? Will he keep putting them off?
8 I tell you, he will see that they get justice, and quickly. However, when the Son of Man comes, will he find faith on the earth?"


본문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기도"에 대한 매우 중요한 진리를 알려주고 있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이유를 Luke는 이렇게 적고 있다.

"제자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항상 기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알려주시고자..."

재미있는 점은 예수께서 사용하신 비유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인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관과 억울함 속에 살아가는 과부를 이야기속에 등장시켜 기도에 대한 자기의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계신다. 얼핏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게된 동기-"항상 기도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와 끈질기게 불의한 재판관을 스토킹하는, 인생에서 더이상 잃을게 없는, 한 맺힌 과부의 모습이 선명하게 오버랩되면서 그러니까 우리도 비유에 나오는 과부처럼 하나님이 응답하실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참고 기도해야 한다.라는 것으로 이 말씀의 교훈을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너무나도 인간중심적인, 자의적인 해석인것 같다. 이러한 결론에 이르는 것은 말씀을 전달하시는 예수님이 어디에 무게를 두시며 말씀하셨는지를 관과한 탓이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그의 비유속에서 "불의한 재판관"에게 촛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비유를 마치신후 이어지는 예수의 말씀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말한것을 들어보라! 하물며 (선하신) 하나님께서 그 선택하신 자들의 울부짖음을 그냥 관과하시겠는가! "(6절,7절). 예수님께서는 그의 비유속에서 매우 "불의한" 재판관을 등장 시킴으로서 우리들이 늘 잊고 있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강조하려 하신것 같다. 만약, 예수의 의도가 우리도 한 맺힌 과부처럼 기도해야 한다.에 있었다면, 비유를 마치신후 "이 한 맺힌 과부가 끈질기게 기도했던 모습을 보라! 너희도 이렇게 포기하지 말고, 불굴의 의지로 하나님께 기도하라! 보좌를 흔드는 기도를 하라!" 이렇게 말씀했었어야 옳다. 하지만, 기도의 응답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는가에 따라 받을수 있기도하고 받을 수 없기도 한것이란 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메시지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이 누구신가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으셨던것 같다.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가 울부짖던 말건 상관없어하는 불의한 재판관과 같지 아니한, 언제나 우리의 기도에 귀를 크게 열어놓으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참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내가 기도하기 이전에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인것을 확신하지 못한 상태속에서 기도하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그렇기에 예수께서 말씀을 맺으시면서 이런 말씀을 남기셨던게 아닐까... "However, when the Son of Man comes, will he find faith on the earth?" 기도하는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한 맺힌 과부의 끈기가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믿음"이 아닐까?